신비한 여름밤의 빗속

 이 책과 함께 하는 동안 줄곧 나는 맥주를 들이켰다. 나는 줄곧 입밖에 '불안'이라는 단어를 내뱉지 않고 있었지만 자주 불안을 느꼈다. 얼마 전에 한 모임에서 빠져나오면서 나는 여러 변명과 핑계를 대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상황을 설명했지만 곧 알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내가 한 공간에서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 자신이 껴안고 있는 불안' 때문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었지만 언제라도 내 자신의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거나 들킬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나는 남몰래 진땀을 빼야했다. 함께 하고 싶은 만큼 내 불안은 커져갔다. 그 불안의 크기에 맞춰 나 또한 내 능력을 신장해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이 아무 말도 없이,그저 그 모임이 가볍고 즐겁기만 한 것이면 되는 거라고 내 어깨를 툭 쳐주기만 했어도, 나는 그곳에 여전히 만족하며 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나를 자꾸만 자극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한 의심, 배려에 대한 의심이, 자꾸 내 귓속에 들어왔고, 그 이야기들은 방향을 바꾼 화살이 되어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 화살이 언제든 내게 돌려 나를 찌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더이상은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곤 금세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 책을 처음 펼쳐 저자의 불안에 대해 읽게 되었을 때,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했다. 그런데 이건 좀 심한 것이었다. 결혼식에서 거의 쓰러질 지경으로 찾아온 불안증세에서 시작해서 공황장애, 30년 간 복용하고 있는 정신과 약 등은 정말 나를 놀라게 했다. 이제까지 내가 속으로 받아온 숱한 불안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때때로 나는 내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사람들 앞에서 서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대학을 나왔으면서도 그 흔한 발표 수업에서 제대로된 발표를 해본 적도 없었다. 대학은 무조건 면접이 없는 대학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여러 면접에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나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을 하려고 해도, 어떤 마음이 내가 말을 할 수 없게 입을 틀어막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정신과 약을 전혀 먹지 않고도 32년을 살아온 셈이니, 나는 비교적 이 경쟁사회에서 '정상'인의 범주에 소속해온 셈이었다. 가끔 누군가로부터 괴짜 혹은 특이하다는 소릴 듣긴 하지만 긴장할 때조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연기하면서 살아온 나였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스콧 스토셀도 그랬다.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불안과 싸워오면서도 회사동료들은 전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어쨌든 그 지독한 불안 속에서도 학창시절을 지나왔고, 결혼을 했고, 직장을 가졌으며, 심지어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게 여겨졌다.

 이 책에는 내가 궁금해하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사실 정신병원에서 6개월 가량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환자들의 약에 대한 효용성도 보아왔지만 어쩔 수 없는 부작용도 많이 보아왔기에 약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터였다. 그러다가 졸업 후에 내가 가게 된 직장이 아이러니하게도 제약회사였다. 그 회사에서는 3가지 약 종류가 대부분의 생산성을 내는 약이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정신과 약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 약을 홍보하는 영업사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내 생각을 조금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잦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 오랜 시간 자기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손녀들을 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 항우울제를 먹은 엄마는 눈이 흐려지고 계속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일상생활을 영위해나가기 힘겨워했다. 그래서 내 마음은 오락가락한 상태였는데, 이 책을 통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이것은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우리들의 많은 부분들이 선천이나 후천이냐 문제에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최근에 나는 유전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는데, 할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만약 모든 병의 원인이 - 성격의 발현 등의 문제도 포함해서 - 유전적인 것에 더 기울어진다면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치매에 걸려 죽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찾아왔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외곬수적인 성격도 어느 정도는 내게 배어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어떻게 극복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한몫 했다.

 올 한해 많은 것들을 시작했고, 또 그만두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나도 어쩌지 못하는 어떤 내면적인 성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타인과 관계를 가지게 되면 언제나 벽이 느껴지고, 그 벽을 타파하려는 노력보다는 자꾸만 도피하게 되더란 말이다. 때때로 내가 이뤄놓았던 어떤 관계의 성이 단 하나의 사소한 것들로 인해 무너져 내린다는 생각이 들면 내 존재 자체도 터무니 없이 허물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나를 지키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도망가고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분리불안' 문제에 대해 저자가 이야기를 해줄 때면 나는 내 아이를 두고, 커피숍에 나와 이 책을 읽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 한탄을 하며 불안을 느꼈다. 이 순간에도 내 아이는 나로 인해 불안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임신 기간 내내 우울해했던 내 감정을 아이가 전달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들이 나를 엄습하자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또 마시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나는 비로소 조금의 안도감을 느꼈다. 매일 오전만큼은 내 시간을 가지던 내가 아이가 갑작스레 수족구에 걸려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고, 일년 전부터 준비한 여행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 함께 여행가는 조카에게 병이 옮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모든 것이 닥쳐오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이 책을 써내려가면서 만났던 토네이도부터 시작해서 심각한 일들을 읽어내려 가니 오히려 내가 겪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져서 웃음이 났다. 그런데도 잘 대처하는 저자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거기다 내가 좋아하고 대단하게 여기는 작가들과 정신분석학자들, 철학자들 등등 집밖에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면서도, 수많은 공포와 싸우면서도, 공황장애에 구토에, 신경쇠약에, 어지럼증까지 엄청난 고통에 휩싸이면서도 자신의 불안의 원인을 알아내고, 자신이 도달하고자 했던 어떤 분야에 대한 열정이 오히려 내게 힘을 주었다.

 불안이 높을 수록 지능이 높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불안이 높을 수록 업무능력이 높다는 설득력있는 연구. 불안이 높을 수록 남을 배려하고, 타인의 감정선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 모든 것에는 역시나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이 존재했다. 과연 이 불안한 시대에, 불안을 만들어내어,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하고, 더 불안한 상황만을 우리에게 헤쳐나가라고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구원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그 숱한 힘겨움 속에서, 죽을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살아 남은 저자가, 또한 이 책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나 또한 나를 위협하는 불안 속에서, 내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시도해왔다.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그 흔적이 알알이 나 자신을 만들어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이 말하는 실패가 결코 내 자신에게조차 실패란 법은 없기 때문을 알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과 자기효능감을 키우는 일.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일을 벌이고, 나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가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마지막 남은 맥주의 한 모금까지 톡톡 털어놓고 나는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자신을 좀 더 높게 평가해야 해요." p.434

 저자는 W박사로 부터 이런 말을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자신에 대해 의심하고, 내 능력에 대해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더 노력해보려고 한다. 나 자신의 남은 인생을 위해서!